도박빚 청산 썰(파워걸) 네임드사다리 파워볼 입출금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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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규칙: 도박빚 청산 썰(파워걸) 네임드사다리 파워볼 입출금3분 게임의 규칙은 매우 간단합니다. '홀짝'이나 '언더오버' 같은 기본적인 예측 방식만 알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복잡한 전략보다는 직관과 운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빠른 속도: 도박빚 청산 썰(파워걸) 네임드사다리 파워볼 입출금3분 는 라운드가 1분 또는 3분 주기로 진행되므로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매 라운드마다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으며,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번의 베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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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빚 청산 썰(파워걸) 네임드사다리 파워볼 입출금3분의 베팅 방법
도박빚 청산 썰(파워걸) 네임드사다리 파워볼 입출금3분의 주요 베팅 방식은 ‘홀짝’과 ‘언더오버’입니다. 홀짝 베팅에서는 사다리의 결과가 홀수일지 짝수일지를 예측하게 됩니다. 결과 값이 홀수면 ‘홀’, 짝수면 ‘짝’에 베팅한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구조로, 직관적이면서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언더오버 베팅이 있습니다. 이 경우 결과 값이 특정 숫자보다 큰지 작은지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결과 값이 중간 기준인 ‘3’보다 작으면 ‘언더’, 크면 ‘오버’에 베팅한 사람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방식 외에도, 게임에 따라서는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보다 세밀한 베팅을 즐길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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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gamemong.info
지난해 8월 분계선을 넘어 한국으로 귀순한 전 북한군 상사 강민국 씨.
(22일 공개된 1부에 이어.)
강민국은 지뢰밭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지뢰밭을 통과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달이 밝았다는 점이었다. 떠날 때는 분계선을 넘을 때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 어둡기를 원했는데, 막상 장벽과 철조망을 통과해 보니 달이 밝아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면 분명히 여러 오징어릴게임 번 실수를 했을 것이지만, 달이 밝아 철조망을 관찰하며 통과할 수 있었다.
지뢰밭을 달빛 아래 조용히 관찰하니 짐승들이 다닌 발자국들이 보였다. 며칠 전 내린 폭우와 이후 이어진 고온의 날씨로 땅이 빨리 말라 단단해지다 보니 발자국이 또릿하게 보였다. 이것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였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야마토게임하기 짐승 발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적어도 짐승이 지나갔다면 선으로 연결된 대인지뢰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목함지뢰는 어쩔 수 없으니 운에 맡겨야 했다. 강 씨는 이동 방향을 산 아래 도로로 정했다. 아무래도 도로엔 지뢰가 그리 많이 묻혀 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동할 때 그는 네발걸음으로 움직였다. 네 발로 가면 무게가 분산 야마토연타 돼, 두 발로 가다가 지뢰를 밟는 것보단 안전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참을 철조망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도로가 나타났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16년도 넘었던 때라 도로에도 풀이 울창하게 자라 있었다. 그런데 도로라고 지뢰가 매설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로 가운데 흙이 깔린 곳을 만났는데, 위에 대전차 지뢰가 잔뜩 릴게임바다신2 설치돼 있었다. 대전차 지뢰는 사람의 몸무게엔 터지지 않는다는 상식을 알고 있던 터라,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통과했다.
얼마쯤 더 가니 도로가 굽은 구간이 나타났다. 거기서부턴 북한 초소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각지대였다. 이제부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철조망을 통과해 네 발로 정신없이 2㎞쯤 왔는데, 불쑥 차단봉이 나타났다. 북한에서 만든 모바일바다이야기 엉성한 차단봉도 아니고, 또 글씨체도 북한식이 아니었다.
‘드디어 남조선에 왔구나.’ 그때의 감격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달빛 아래 차단봉 옆에 있는 CCTV가 보였다. 중국 영화에서 CCTV를 봤기에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나를 보고 있구나’ 싶어 벌떡 일어났다. 이제부턴 네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군복도 털면서 CCTV 앞을 괜히 서성거렸다. 빨리 나를 발견하라는 나름의 신호였다.
그는 북한에서 9년 동안 보초를 서본 군인이었다. 차단봉 건너편에서 근무에 나온 군인이 졸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보초선을 통과하면 누군지 모를 한국 군인이 처벌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막 도착한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군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웅얼거리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정지. 정지”라고 했다. 하지만 강 씨는 정지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북한에선 ‘섯’이라고 하지 정지라고 하진 않는다.
한국 사회에 나온지 1개월쯤 지난 뒤의 강 씨 모습. 아직까진 여윈 흔적이 엿보인다.
● 처음 본 한국군
한참을 기다리다가 더는 기다릴 수 없어 할 수 없이 차단봉을 넘어 걸어갔다. 좀 가다 보니 철조망과 통문이 나타났다. 그 앞에 서니, 스피커 소리가 더 긴박해졌고, 잘 들렸다.
“지금 대상은 불응하고 있다. 접근하면 사격하겠다. 귀순 의향 있으면 손을 들라.”
대상이 뭐고, 불응이 뭐고, 귀순이 뭔 말인지는 몰랐지만, 사격과 손들라는 말은 알아들었다.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스피커가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했다.
통문이 열리더니 10여 명의 군인이 쏟아져 나왔다. 그를 땅에 눕히더니 뒤로 손을 묶었다. ‘이게 환영이냐’는 생각이 스쳤다.
“동행자는 없습니까. 추격조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필요한 것 없습니까.” “물을 좀 주세요.” 누군가 물병을 가져다 입에 대주었다. 벌컥벌컥 마시고 또 마셨다.
나중에 들은 바지만, 한국군은 그가 북한 지역에서 움직일 때부터 적외선 카메라로 지켜봤다고 한다. 하지만 네 발로 움직이니 짐승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한국 지역에 도착해 벌떡 일어서서야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두 손을 묶인 와중에도 강 씨는 한국군을 관찰했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이 너무나 멋진 군복이었다. 신발도 멋진 소가죽 군화였다.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하는 군인들도 이들처럼 잘 입진 못했다.
거기에 방탄복과 방탄모, 야시경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강 씨는 북한군 생활 9년 동안 방탄복이나 야시경을 본 적이 없다. 소총도 번쩍번쩍한 것이 녹을 열심히 닦아내기에 급급한 북한군의 낡은 자동보총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거기에 마중 나온 군인들의 키는 대체로 강 씨보다 한 뼘씩 컸다. 강 씨도 부대에서 키가 큰 30% 축에 들어갔는데, 한국 군인들은 훨씬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고, 피부에서 기름기가 돌았다.
‘아, 나를 마중하느라 키가 큰 군인들을 골라내서, 차려 입히고 나온 거겠지.’
강 씨는 자기 몰골을 살펴봤다. 가뜩이나 낡은 군복이 다 찢겨 있었다. 갑자기 기가 죽었다.군인들이 그에게 안대를 씌우더니 차에 타게 했다. 차에서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맞아본 에어컨 바람이었다.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하나 풀렸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이 더위에 저런 군복과 방탄복을 입고도 견딜 수 있었구나.’
그가 한국에 도착한 시간은 2024년 8월 20일 새벽 2시경이었다.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 단풍도 아름답다. 한국의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강 씨.
● 죽을 받아 들고 눈물 흘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22사단 본부. 도착해 안대를 풀어주었다. 본부의 군인들도 똑같은 군복차림이었고 다들 키가 컸다. 그제야 자신을 맞은 군인들이 일부러 골라 뽑아온 사람들이 나온 것이 아닌 줄 알았다.
들어가자마자 코로나 검사부터 했다. 여성 군의관들이 새벽에 나오게 만들어 짜증 났는지는 몰라도 딱딱한 인상으로 그를 검사했다.
‘나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그런 생각은 곧 풀렸다. 한 장교가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서 “배가 고프다”고 대답했다. 이틀 동안 꼬박 굶었다. 실은 병원에서 탈출하고부터 거의 먹지 못했다.
장교는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이어 “몸을 씻고 싶다”고 하자 그를 목욕탕에 데리고 갔다. 씻고 나오니 한국군 운동복을 주었다.
목욕하는 사이 식사가 준비됐다. 그가 한국에 오면서 가장 기대한 것이 첫 식사였다. ‘그래도 고기는 주겠지’라고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죽 한 그릇이 달랑 나왔다. 처음엔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교의 말이 눈물이 쏟아졌다.
“오래 굶었다가 갑자기 먹으면 탈이 나니, 일단 죽부터 먹으면서 점차 식사량을 늘여야 합니다.”
‘나는 남조선을 해방하겠다고, 남조선 괴뢰군을 때려잡겠다고 10년을 군사복무 했는데, 이들은 나를 동포로, 형제로 맞아주는구나.’
멀건 죽 속에서도 뭔가 씹혔다. 썩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전복이었다. 죽을 먹고 아침에 다시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차가 늘어선 도로. 포장 상태가 너무 좋아 흔들리지 않는 도로가 눈에 보였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북한군에서 운전병이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3월, ‘다음학교’에 다니면서 어린 친구들과 함께 대입준비를 하고 있는 강 씨.
● 운전병으로 입대하다
강 씨는 18세였던 2015년 북한군에 입대했다. 학교 다닐 때 학급반장도 하는 등 공부를 잘했지만, 어머니는 군에 가라고 했다.
“너는 출신성분이 걸려 간부가 될 순 없으니, 군에 가서 평생 써먹을 기술이나 배워라.”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평양에서 중앙당 간부를 하던 할아버지는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당의 의료 정책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산골로 추방됐다. 아버지가 열심히 노력해 동해안의 한 도시로 이사를 왔지만, 거기까지였다.
부모들이 열심히 로비한 덕분에 강 씨는 입대하면서 200달러는 뇌물로 써야 갈 수 있다는 군 운전수 양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양성소 과정은 1년이었다. 1년 동안 10분 정도씩 화물차를 세 번 몰아보고 졸업했다.
전체 양성소 인원은 800명 정도. 1개 대대가 120명 정도인데, 대대마다 1958년부터 생산된 ‘승리58’ 목탄 화물차가 실습용으로 1대씩 있었다. 이 차는 손으로 스타찡(리코일 스타터)을 1~2시간 교대로 돌려야 발동이 걸렸다. 그렇게 겨우 엔진을 돌려도 엔진에 목탄 재가 계속 차서 수시로 차가 멈춰 섰다.
그래도 그가 간 운전사 양성소는 총참모부 직속이라, 군단별로 한 개씩 있는 운전사 양성소보다는 훨씬 사정이 좋았다. 겨울엔 목탄 만들 참나무를 찍어오기 위해 깊은 산에 3시간 넘게 걸어갔다가, 나무를 등짐으로 메고 다시 돌아왔다.
늘 배가 고팠다. 알루미늄 공기에 훌쩍 들어간 옥수수밥, 멀건 소금국, 염장무 3형제 반찬이 1년 내내 제공됐다. 염장무를 아무 양념도 없이 채를 치고, 동그랗게 썰고, 깍두기처럼 썬 것이 염장무 3형제다.
그냥 썰어주면 되지만, 과거 김정일이 군인들에게 3가지 반찬을 무조건 제공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람에 모양만 달리해 그릇에 담는다. 이렇게라도 사진을 찍어 위에 보고하지 않으면 반찬 3가지를 보장하라는 지시를 어긴 것이 된다. 능력은 없는데, 하라고는 하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북한군 복무 9년 동안 취사 당번을 수없이 선 덕분에 강 씨의 요리 실력은 주변 친구들에게서 호평을 받는다.
● 목탄차, 쌀겨차, 가랑잎차…
1년 동안 양성소 생활을 마치고 부대에 배속됐다. 그의 대대엔 전투차량으로 등록된 화물차가 8대가 있었다. 하지만 가동할 수 있었던 차량은 그가 복무하던 내내 2대뿐이었다.
나머지는 각목을 이용해 땅에서 띄워 보관만 했다. 이 차들은 전쟁이 나도 가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동되는 2대를 위해 부품들을 오랫동안 뜯어내 사용했기 때문이다. 바퀴도 철심이 다 드러난 쓰다 버린 폐타이어가 붙어있었다.
지휘관은 “네 차를 몰고 싶으면 부품을 사 와서 끼우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빈말임을 누구나 안다. 설령 부잣집 자식이어서 부품을 사서 갖고 와도 고참들이 또 뜯어갈 것이 뻔했다.
그나마 강 씨의 부대는 총참모부 직속이라 괜찮은 부대라서 대대에 가동되는 차 2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2대로 각종 건설장에 노력 동원도 나가고, 후방 물자도 실어 오고, 김장철에 배추나 무도 실어 왔다.
그가 입대할 땐 북한군 부대에 참나무 숯으로 가동되는 목탄차만 있었는데, 유엔의 대북제재가 심화하면서 화물차들의 연료가 다양하게 바뀌었다. 어떤 연료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차에 이름이 붙었는데, 목탄차, 쌀겨차, 카바이드차, 알탄차, 메탄가스차, 가랑잎차 등으로 나뉘었다.
목탄차는 힘이 좋지만, 참나무 숯을 구하기 힘들었다. 쌀겨차는 탈곡한 벼 껍질로 가는 차였다. 장점은 연기가 적게 났고, 힘도 좋았고, 벼 껍질을 구하기 쉬웠다. 가다가 정미소가 있으면 쌀 4㎏ 정도 살 수 있는 돈인 2만 원에 화물차 적재함 가득 채울 수 있는 벼 껍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대신 조수가 적재함에 타서 쉴 새 없이 난로에 껍질을 넣어야 했다.
비슷한 차가 가랑잎차인데, 아무 가랑잎이나 쓰진 못하고 참나무 가랑잎을 써야 했다. 이 차는 조금만 먼 곳에 가려면 적재함에 가랑잎을 가득 실어야 했고, 조수는 벼 껍질보다 더 열심히 난로에 가랑잎을 넣어야 했다.
알탄차는 알처럼 빚은 무연탄을 적재함의 난로에 넣어 가는 차였다. 카바이드와 메탄 차는 연료 구입비가 비쌌다. 휘발유나 디젤유가 없으니, 위의 대용 연료를 사용했는데, 대신 자동차 부품이 너무 자주 고장 나 한번 갔다 오면 분해해서 그을음을 긁어내야 했다. 이것이 2024년 현재의 북한군 실태다.
연기를 날리며 달리는 북한군 목탄차. 적재함에 실은 난로에 무엇을 때는 가에 따라 목탄차, 가랑잎차, 쌀겨차 등으로 구분된다. 동아일보 DB
● 북한군 지휘관 운전사
북한군 부대들에서 부품과 연료난으로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때, 그나마 상황이 좋은 차들은 고위 군관들이 타는 승용차였다.
북한군은 일정한 계급 이상인 군관에게 공무용 차를 주는데 이를 직무차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당국이 승용차 부품이나 연료를 직무차에게 특별히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비밀이 있다.
북한에서 어느 정도 돈이 있는 부유층들은 자식을 군에 보낼 때 승용차를 중고로 사서 보낸다. 북한군 군관들이 타는 차는 중국제 우와즈, 북경, 신비라는 브랜드인데, 북한에서 북경 중고차는 2000달러 정도 하고, 우와즈나 신비는 1500달러 정도 거래가 된다.
이렇게 차를 서서 입대하면, 운전수 양성소를 마치지 않아도 곧바로 여단장이나 사단장 등 고위 군관의 직무차 운전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군 복무 내내 승용차를 운용하는 연료나 부품 등은 본인이 집에서 돈을 가져와 대야 한다.
대신 좋은 점은 규율 생활도 하지 않고, 동원에도 빠지며, 자기 방에서 편안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대할 때 지휘관이 대학 추천권을 준다.
차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잘 사는 집 자식이란 의미다. 운전사는 지휘관의 집안 경조사나 먹거리 등도 챙겨야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반대급부로 지휘관은 운전사를 얼마든지 휴가 보낼 수 있다. 운전사 두 명 정도만 채용해 교대로 굴리면, 1년에 절반은 집에 가서 놀면서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다.
이렇게 차를 갖고 입대한 운전사를 채용한 지휘관이 북한군 전체에서 10% 이상은 된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준 차를 타고 다니는 다른 지휘관은 규정대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도 다 부유한 집안 자식을 자기 운전사로 채용해서 연료나 부품을 대게 한다. 즉 북한군 고위 간부들의 운전사는 부잣집 자식인 것이다.
지휘관 운전사도 어느 지역인지, 어느 직책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평양 인근에서 지휘관 운전사를 하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고 소문이 났다. 자기 돈으로 군용차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휘관 가족까지 운전사가 다 먹여 살려야 한다.
북한에서 권력이 막강하고, 돈이 아주 많은 진짜 부자들은 자식들을 운전사로 보내지 않는다. 어쨌든 직무차 운전사는 10년을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권력층 또는 부자는 자식을 집 근처 부대에서 편안하게 5년 정도 복무하게 한 뒤 입당시켜 대학을 졸업하게 한다. 부모의 권력이 너무 세면 지휘관들이 뇌물을 달라는 얘기도 못 하고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권력이 없는데, 돈이 많으면 아예 소속 중대 정도는 먹여 살린다. 대신 자식은 후방 물자 구입이란 명목으로 집에 와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제대한다.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강민국 씨. 이제 그는 목숨 걸고 찾은 자유의 의미를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 로또 맞은 운명
2023년 말 강 씨는 김정은이 지시한 공사에 차출됐다. 김정은이 지시한 날짜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누가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휘관들은 군인들을 인정사정없이 일을 시켰다.
강 씨는 수 톤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넓은 작업장에 중장비가 3대뿐이고, 그마저도 수시로 고장 나거나 부품이 없어 사실상 인력으로 모든 작업을 해결해야 했다.
아침 기상 시간은 새벽 4시. 청소하고 밥을 먹고 5시에 공사장에 나간다. 세수는 어림도 없고, 이를 닦을 시간이 있는 날은 행복한 날이었다.
12시까지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저녁은 6시가 아니라, 그날 과제를 마친 새벽 1시쯤에 제공됐다. 그걸 먹고 이가 바글거리는 모포(담요)를 덮고 3시간을 잤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북한군 모포는 딱 3번 바뀌었다. 수십 년을 사용한 모포는 사실상 누더기나 다름이 없지만, 수면시간이 3시간인 환경에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배불리 먹는 것도 아니었다. 옥수수밥에 멀건 소금국을 먹고 일어서면 그때에야 배고픈 게 느껴졌다. 허약 환자들, 결핵환자들이 속출했지만,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떨어질 처벌이 무서워, 군인들에겐 단 하루의 휴식일도 허용되지 않았다.
강 씨는 이런 환경에서 7개월을 버티다가 결국 쓰러졌다. 병원에 가니 내시경도 하지 않고 위경련이라고 했다. 여단 병원 수준에선 수면 내시경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강제로 내시경을 삼키라고 했는데, 너무 아파 넘어가지 않았다. 수면 내시경을 하려고 하면 사회 병원에 가서 돈을 내야 했는데, 너무나 비싸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북한의 민간병원은 ‘도 인민병원’ ‘군 인민병원’ 이런 식으로 불렀는데, 3년 전부터 간판에서 인민이란 말을 뺐다. 돈받고 치료하면서 인민병원이라고 부르기에 멋쩍어서인지도 모른다.
진단도 받지 못한 채 그는 뭔지 모를 찌꺼기가 떠다니는 수액을 맞다가 결국 탈북을 선택했다. 집에서 약 살 돈을 보내줄 수 있었으면 탈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탈북하는 내내 아픈 배를 쥐어 잡고 이동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팠던 위가 한국에 와서 약 몇 알을 먹으니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북한에 있었으면 진단도 못 내리고 생사람만 잡을 뻔했다.
여러 조사를 마치고 강 씨는 올해 1월 서울 근교 지역에 임대주택을 받고 한국 사회에 나왔다. 불과 10개월 정도 남짓한 한국 생활이지만, 너무나 행복하다. 어디든 다닐 수 있고, 인권을 존중받아 좋고, 배고픔을 몰라 좋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대학에 가라고 권했다. 그래서 한국 정착 2개월 만에 ‘다음학교’에 입학해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다음학교는 남북 청소년이 함께 공부하는 서울시 등록 대안교육기관이다.
이런 준비를 마친 끝에 얼마 전 가천대 물리치료학과에 입학했고, 내년 3월부터 다닐 예정이다. 더 좋은 대학에 가지 왜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했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가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죽을 뻔한 운명이 한국에 와서 새롭게 태어나게 됐으니, 자신도 누군가를 치료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물론 지금의 결심이 옳은 것인지 확신은 없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아직 뭐가 뭔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되든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는 세계에서 가장 극악한 감옥에서 탈출한 엄청난 행운아다.
인민의 탈출을 막기 위해 북한은 약 240㎞의 남쪽 국경에 5m 높이의 장벽을 세우고, 8중 철조망을 만들고, 없는 전기를 아낌없이 공급하고 있다. 철조망 밖의 지뢰밭과 장벽 밖의 무수한 감시초소와 잠복초소까지 생각한다면, 감옥도 이런 감옥이 또 어디에 있을까.
탈북하다가 전기에 붙어 죽고, 총에 맞아 죽고, 지뢰를 밟아 죽은 이는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북한이란 감옥에 갇혀 생지옥을 경험하는 2000만 동포들을 생각하면, 강 씨는 로또보다 더한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그리고 뭐든 새로운 도화지에 그릴 수 있는 28세일뿐이다.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오늘도 그의 꿈은 새싹처럼 자라고 있다.
동아일보·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2일 공개된 1부에 이어.)
강민국은 지뢰밭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지뢰밭을 통과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달이 밝았다는 점이었다. 떠날 때는 분계선을 넘을 때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 어둡기를 원했는데, 막상 장벽과 철조망을 통과해 보니 달이 밝아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면 분명히 여러 오징어릴게임 번 실수를 했을 것이지만, 달이 밝아 철조망을 관찰하며 통과할 수 있었다.
지뢰밭을 달빛 아래 조용히 관찰하니 짐승들이 다닌 발자국들이 보였다. 며칠 전 내린 폭우와 이후 이어진 고온의 날씨로 땅이 빨리 말라 단단해지다 보니 발자국이 또릿하게 보였다. 이것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였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야마토게임하기 짐승 발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적어도 짐승이 지나갔다면 선으로 연결된 대인지뢰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목함지뢰는 어쩔 수 없으니 운에 맡겨야 했다. 강 씨는 이동 방향을 산 아래 도로로 정했다. 아무래도 도로엔 지뢰가 그리 많이 묻혀 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동할 때 그는 네발걸음으로 움직였다. 네 발로 가면 무게가 분산 야마토연타 돼, 두 발로 가다가 지뢰를 밟는 것보단 안전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참을 철조망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도로가 나타났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16년도 넘었던 때라 도로에도 풀이 울창하게 자라 있었다. 그런데 도로라고 지뢰가 매설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로 가운데 흙이 깔린 곳을 만났는데, 위에 대전차 지뢰가 잔뜩 릴게임바다신2 설치돼 있었다. 대전차 지뢰는 사람의 몸무게엔 터지지 않는다는 상식을 알고 있던 터라,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통과했다.
얼마쯤 더 가니 도로가 굽은 구간이 나타났다. 거기서부턴 북한 초소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각지대였다. 이제부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철조망을 통과해 네 발로 정신없이 2㎞쯤 왔는데, 불쑥 차단봉이 나타났다. 북한에서 만든 모바일바다이야기 엉성한 차단봉도 아니고, 또 글씨체도 북한식이 아니었다.
‘드디어 남조선에 왔구나.’ 그때의 감격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달빛 아래 차단봉 옆에 있는 CCTV가 보였다. 중국 영화에서 CCTV를 봤기에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나를 보고 있구나’ 싶어 벌떡 일어났다. 이제부턴 네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군복도 털면서 CCTV 앞을 괜히 서성거렸다. 빨리 나를 발견하라는 나름의 신호였다.
그는 북한에서 9년 동안 보초를 서본 군인이었다. 차단봉 건너편에서 근무에 나온 군인이 졸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보초선을 통과하면 누군지 모를 한국 군인이 처벌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막 도착한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군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웅얼거리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정지. 정지”라고 했다. 하지만 강 씨는 정지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북한에선 ‘섯’이라고 하지 정지라고 하진 않는다.
한국 사회에 나온지 1개월쯤 지난 뒤의 강 씨 모습. 아직까진 여윈 흔적이 엿보인다.
● 처음 본 한국군
한참을 기다리다가 더는 기다릴 수 없어 할 수 없이 차단봉을 넘어 걸어갔다. 좀 가다 보니 철조망과 통문이 나타났다. 그 앞에 서니, 스피커 소리가 더 긴박해졌고, 잘 들렸다.
“지금 대상은 불응하고 있다. 접근하면 사격하겠다. 귀순 의향 있으면 손을 들라.”
대상이 뭐고, 불응이 뭐고, 귀순이 뭔 말인지는 몰랐지만, 사격과 손들라는 말은 알아들었다.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스피커가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했다.
통문이 열리더니 10여 명의 군인이 쏟아져 나왔다. 그를 땅에 눕히더니 뒤로 손을 묶었다. ‘이게 환영이냐’는 생각이 스쳤다.
“동행자는 없습니까. 추격조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필요한 것 없습니까.” “물을 좀 주세요.” 누군가 물병을 가져다 입에 대주었다. 벌컥벌컥 마시고 또 마셨다.
나중에 들은 바지만, 한국군은 그가 북한 지역에서 움직일 때부터 적외선 카메라로 지켜봤다고 한다. 하지만 네 발로 움직이니 짐승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한국 지역에 도착해 벌떡 일어서서야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두 손을 묶인 와중에도 강 씨는 한국군을 관찰했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이 너무나 멋진 군복이었다. 신발도 멋진 소가죽 군화였다.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하는 군인들도 이들처럼 잘 입진 못했다.
거기에 방탄복과 방탄모, 야시경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강 씨는 북한군 생활 9년 동안 방탄복이나 야시경을 본 적이 없다. 소총도 번쩍번쩍한 것이 녹을 열심히 닦아내기에 급급한 북한군의 낡은 자동보총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거기에 마중 나온 군인들의 키는 대체로 강 씨보다 한 뼘씩 컸다. 강 씨도 부대에서 키가 큰 30% 축에 들어갔는데, 한국 군인들은 훨씬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고, 피부에서 기름기가 돌았다.
‘아, 나를 마중하느라 키가 큰 군인들을 골라내서, 차려 입히고 나온 거겠지.’
강 씨는 자기 몰골을 살펴봤다. 가뜩이나 낡은 군복이 다 찢겨 있었다. 갑자기 기가 죽었다.군인들이 그에게 안대를 씌우더니 차에 타게 했다. 차에서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맞아본 에어컨 바람이었다.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하나 풀렸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이 더위에 저런 군복과 방탄복을 입고도 견딜 수 있었구나.’
그가 한국에 도착한 시간은 2024년 8월 20일 새벽 2시경이었다.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 단풍도 아름답다. 한국의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강 씨.
● 죽을 받아 들고 눈물 흘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22사단 본부. 도착해 안대를 풀어주었다. 본부의 군인들도 똑같은 군복차림이었고 다들 키가 컸다. 그제야 자신을 맞은 군인들이 일부러 골라 뽑아온 사람들이 나온 것이 아닌 줄 알았다.
들어가자마자 코로나 검사부터 했다. 여성 군의관들이 새벽에 나오게 만들어 짜증 났는지는 몰라도 딱딱한 인상으로 그를 검사했다.
‘나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그런 생각은 곧 풀렸다. 한 장교가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서 “배가 고프다”고 대답했다. 이틀 동안 꼬박 굶었다. 실은 병원에서 탈출하고부터 거의 먹지 못했다.
장교는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이어 “몸을 씻고 싶다”고 하자 그를 목욕탕에 데리고 갔다. 씻고 나오니 한국군 운동복을 주었다.
목욕하는 사이 식사가 준비됐다. 그가 한국에 오면서 가장 기대한 것이 첫 식사였다. ‘그래도 고기는 주겠지’라고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죽 한 그릇이 달랑 나왔다. 처음엔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교의 말이 눈물이 쏟아졌다.
“오래 굶었다가 갑자기 먹으면 탈이 나니, 일단 죽부터 먹으면서 점차 식사량을 늘여야 합니다.”
‘나는 남조선을 해방하겠다고, 남조선 괴뢰군을 때려잡겠다고 10년을 군사복무 했는데, 이들은 나를 동포로, 형제로 맞아주는구나.’
멀건 죽 속에서도 뭔가 씹혔다. 썩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전복이었다. 죽을 먹고 아침에 다시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차가 늘어선 도로. 포장 상태가 너무 좋아 흔들리지 않는 도로가 눈에 보였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북한군에서 운전병이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3월, ‘다음학교’에 다니면서 어린 친구들과 함께 대입준비를 하고 있는 강 씨.
● 운전병으로 입대하다
강 씨는 18세였던 2015년 북한군에 입대했다. 학교 다닐 때 학급반장도 하는 등 공부를 잘했지만, 어머니는 군에 가라고 했다.
“너는 출신성분이 걸려 간부가 될 순 없으니, 군에 가서 평생 써먹을 기술이나 배워라.”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평양에서 중앙당 간부를 하던 할아버지는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당의 의료 정책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산골로 추방됐다. 아버지가 열심히 노력해 동해안의 한 도시로 이사를 왔지만, 거기까지였다.
부모들이 열심히 로비한 덕분에 강 씨는 입대하면서 200달러는 뇌물로 써야 갈 수 있다는 군 운전수 양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양성소 과정은 1년이었다. 1년 동안 10분 정도씩 화물차를 세 번 몰아보고 졸업했다.
전체 양성소 인원은 800명 정도. 1개 대대가 120명 정도인데, 대대마다 1958년부터 생산된 ‘승리58’ 목탄 화물차가 실습용으로 1대씩 있었다. 이 차는 손으로 스타찡(리코일 스타터)을 1~2시간 교대로 돌려야 발동이 걸렸다. 그렇게 겨우 엔진을 돌려도 엔진에 목탄 재가 계속 차서 수시로 차가 멈춰 섰다.
그래도 그가 간 운전사 양성소는 총참모부 직속이라, 군단별로 한 개씩 있는 운전사 양성소보다는 훨씬 사정이 좋았다. 겨울엔 목탄 만들 참나무를 찍어오기 위해 깊은 산에 3시간 넘게 걸어갔다가, 나무를 등짐으로 메고 다시 돌아왔다.
늘 배가 고팠다. 알루미늄 공기에 훌쩍 들어간 옥수수밥, 멀건 소금국, 염장무 3형제 반찬이 1년 내내 제공됐다. 염장무를 아무 양념도 없이 채를 치고, 동그랗게 썰고, 깍두기처럼 썬 것이 염장무 3형제다.
그냥 썰어주면 되지만, 과거 김정일이 군인들에게 3가지 반찬을 무조건 제공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람에 모양만 달리해 그릇에 담는다. 이렇게라도 사진을 찍어 위에 보고하지 않으면 반찬 3가지를 보장하라는 지시를 어긴 것이 된다. 능력은 없는데, 하라고는 하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북한군 복무 9년 동안 취사 당번을 수없이 선 덕분에 강 씨의 요리 실력은 주변 친구들에게서 호평을 받는다.
● 목탄차, 쌀겨차, 가랑잎차…
1년 동안 양성소 생활을 마치고 부대에 배속됐다. 그의 대대엔 전투차량으로 등록된 화물차가 8대가 있었다. 하지만 가동할 수 있었던 차량은 그가 복무하던 내내 2대뿐이었다.
나머지는 각목을 이용해 땅에서 띄워 보관만 했다. 이 차들은 전쟁이 나도 가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동되는 2대를 위해 부품들을 오랫동안 뜯어내 사용했기 때문이다. 바퀴도 철심이 다 드러난 쓰다 버린 폐타이어가 붙어있었다.
지휘관은 “네 차를 몰고 싶으면 부품을 사 와서 끼우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빈말임을 누구나 안다. 설령 부잣집 자식이어서 부품을 사서 갖고 와도 고참들이 또 뜯어갈 것이 뻔했다.
그나마 강 씨의 부대는 총참모부 직속이라 괜찮은 부대라서 대대에 가동되는 차 2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2대로 각종 건설장에 노력 동원도 나가고, 후방 물자도 실어 오고, 김장철에 배추나 무도 실어 왔다.
그가 입대할 땐 북한군 부대에 참나무 숯으로 가동되는 목탄차만 있었는데, 유엔의 대북제재가 심화하면서 화물차들의 연료가 다양하게 바뀌었다. 어떤 연료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차에 이름이 붙었는데, 목탄차, 쌀겨차, 카바이드차, 알탄차, 메탄가스차, 가랑잎차 등으로 나뉘었다.
목탄차는 힘이 좋지만, 참나무 숯을 구하기 힘들었다. 쌀겨차는 탈곡한 벼 껍질로 가는 차였다. 장점은 연기가 적게 났고, 힘도 좋았고, 벼 껍질을 구하기 쉬웠다. 가다가 정미소가 있으면 쌀 4㎏ 정도 살 수 있는 돈인 2만 원에 화물차 적재함 가득 채울 수 있는 벼 껍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대신 조수가 적재함에 타서 쉴 새 없이 난로에 껍질을 넣어야 했다.
비슷한 차가 가랑잎차인데, 아무 가랑잎이나 쓰진 못하고 참나무 가랑잎을 써야 했다. 이 차는 조금만 먼 곳에 가려면 적재함에 가랑잎을 가득 실어야 했고, 조수는 벼 껍질보다 더 열심히 난로에 가랑잎을 넣어야 했다.
알탄차는 알처럼 빚은 무연탄을 적재함의 난로에 넣어 가는 차였다. 카바이드와 메탄 차는 연료 구입비가 비쌌다. 휘발유나 디젤유가 없으니, 위의 대용 연료를 사용했는데, 대신 자동차 부품이 너무 자주 고장 나 한번 갔다 오면 분해해서 그을음을 긁어내야 했다. 이것이 2024년 현재의 북한군 실태다.
연기를 날리며 달리는 북한군 목탄차. 적재함에 실은 난로에 무엇을 때는 가에 따라 목탄차, 가랑잎차, 쌀겨차 등으로 구분된다. 동아일보 DB
● 북한군 지휘관 운전사
북한군 부대들에서 부품과 연료난으로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때, 그나마 상황이 좋은 차들은 고위 군관들이 타는 승용차였다.
북한군은 일정한 계급 이상인 군관에게 공무용 차를 주는데 이를 직무차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당국이 승용차 부품이나 연료를 직무차에게 특별히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비밀이 있다.
북한에서 어느 정도 돈이 있는 부유층들은 자식을 군에 보낼 때 승용차를 중고로 사서 보낸다. 북한군 군관들이 타는 차는 중국제 우와즈, 북경, 신비라는 브랜드인데, 북한에서 북경 중고차는 2000달러 정도 하고, 우와즈나 신비는 1500달러 정도 거래가 된다.
이렇게 차를 서서 입대하면, 운전수 양성소를 마치지 않아도 곧바로 여단장이나 사단장 등 고위 군관의 직무차 운전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군 복무 내내 승용차를 운용하는 연료나 부품 등은 본인이 집에서 돈을 가져와 대야 한다.
대신 좋은 점은 규율 생활도 하지 않고, 동원에도 빠지며, 자기 방에서 편안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대할 때 지휘관이 대학 추천권을 준다.
차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잘 사는 집 자식이란 의미다. 운전사는 지휘관의 집안 경조사나 먹거리 등도 챙겨야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반대급부로 지휘관은 운전사를 얼마든지 휴가 보낼 수 있다. 운전사 두 명 정도만 채용해 교대로 굴리면, 1년에 절반은 집에 가서 놀면서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다.
이렇게 차를 갖고 입대한 운전사를 채용한 지휘관이 북한군 전체에서 10% 이상은 된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준 차를 타고 다니는 다른 지휘관은 규정대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도 다 부유한 집안 자식을 자기 운전사로 채용해서 연료나 부품을 대게 한다. 즉 북한군 고위 간부들의 운전사는 부잣집 자식인 것이다.
지휘관 운전사도 어느 지역인지, 어느 직책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평양 인근에서 지휘관 운전사를 하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고 소문이 났다. 자기 돈으로 군용차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휘관 가족까지 운전사가 다 먹여 살려야 한다.
북한에서 권력이 막강하고, 돈이 아주 많은 진짜 부자들은 자식들을 운전사로 보내지 않는다. 어쨌든 직무차 운전사는 10년을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권력층 또는 부자는 자식을 집 근처 부대에서 편안하게 5년 정도 복무하게 한 뒤 입당시켜 대학을 졸업하게 한다. 부모의 권력이 너무 세면 지휘관들이 뇌물을 달라는 얘기도 못 하고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권력이 없는데, 돈이 많으면 아예 소속 중대 정도는 먹여 살린다. 대신 자식은 후방 물자 구입이란 명목으로 집에 와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제대한다.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강민국 씨. 이제 그는 목숨 걸고 찾은 자유의 의미를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 로또 맞은 운명
2023년 말 강 씨는 김정은이 지시한 공사에 차출됐다. 김정은이 지시한 날짜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누가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휘관들은 군인들을 인정사정없이 일을 시켰다.
강 씨는 수 톤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넓은 작업장에 중장비가 3대뿐이고, 그마저도 수시로 고장 나거나 부품이 없어 사실상 인력으로 모든 작업을 해결해야 했다.
아침 기상 시간은 새벽 4시. 청소하고 밥을 먹고 5시에 공사장에 나간다. 세수는 어림도 없고, 이를 닦을 시간이 있는 날은 행복한 날이었다.
12시까지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저녁은 6시가 아니라, 그날 과제를 마친 새벽 1시쯤에 제공됐다. 그걸 먹고 이가 바글거리는 모포(담요)를 덮고 3시간을 잤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북한군 모포는 딱 3번 바뀌었다. 수십 년을 사용한 모포는 사실상 누더기나 다름이 없지만, 수면시간이 3시간인 환경에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배불리 먹는 것도 아니었다. 옥수수밥에 멀건 소금국을 먹고 일어서면 그때에야 배고픈 게 느껴졌다. 허약 환자들, 결핵환자들이 속출했지만,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떨어질 처벌이 무서워, 군인들에겐 단 하루의 휴식일도 허용되지 않았다.
강 씨는 이런 환경에서 7개월을 버티다가 결국 쓰러졌다. 병원에 가니 내시경도 하지 않고 위경련이라고 했다. 여단 병원 수준에선 수면 내시경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강제로 내시경을 삼키라고 했는데, 너무 아파 넘어가지 않았다. 수면 내시경을 하려고 하면 사회 병원에 가서 돈을 내야 했는데, 너무나 비싸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북한의 민간병원은 ‘도 인민병원’ ‘군 인민병원’ 이런 식으로 불렀는데, 3년 전부터 간판에서 인민이란 말을 뺐다. 돈받고 치료하면서 인민병원이라고 부르기에 멋쩍어서인지도 모른다.
진단도 받지 못한 채 그는 뭔지 모를 찌꺼기가 떠다니는 수액을 맞다가 결국 탈북을 선택했다. 집에서 약 살 돈을 보내줄 수 있었으면 탈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탈북하는 내내 아픈 배를 쥐어 잡고 이동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팠던 위가 한국에 와서 약 몇 알을 먹으니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북한에 있었으면 진단도 못 내리고 생사람만 잡을 뻔했다.
여러 조사를 마치고 강 씨는 올해 1월 서울 근교 지역에 임대주택을 받고 한국 사회에 나왔다. 불과 10개월 정도 남짓한 한국 생활이지만, 너무나 행복하다. 어디든 다닐 수 있고, 인권을 존중받아 좋고, 배고픔을 몰라 좋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대학에 가라고 권했다. 그래서 한국 정착 2개월 만에 ‘다음학교’에 입학해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다음학교는 남북 청소년이 함께 공부하는 서울시 등록 대안교육기관이다.
이런 준비를 마친 끝에 얼마 전 가천대 물리치료학과에 입학했고, 내년 3월부터 다닐 예정이다. 더 좋은 대학에 가지 왜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했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가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죽을 뻔한 운명이 한국에 와서 새롭게 태어나게 됐으니, 자신도 누군가를 치료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물론 지금의 결심이 옳은 것인지 확신은 없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아직 뭐가 뭔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되든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는 세계에서 가장 극악한 감옥에서 탈출한 엄청난 행운아다.
인민의 탈출을 막기 위해 북한은 약 240㎞의 남쪽 국경에 5m 높이의 장벽을 세우고, 8중 철조망을 만들고, 없는 전기를 아낌없이 공급하고 있다. 철조망 밖의 지뢰밭과 장벽 밖의 무수한 감시초소와 잠복초소까지 생각한다면, 감옥도 이런 감옥이 또 어디에 있을까.
탈북하다가 전기에 붙어 죽고, 총에 맞아 죽고, 지뢰를 밟아 죽은 이는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북한이란 감옥에 갇혀 생지옥을 경험하는 2000만 동포들을 생각하면, 강 씨는 로또보다 더한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그리고 뭐든 새로운 도화지에 그릴 수 있는 28세일뿐이다.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오늘도 그의 꿈은 새싹처럼 자라고 있다.
동아일보·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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