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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미술관 지하 1층 전시장 들머리 공간. ‘난지도’ 동인 하용석 작가가 1987년 공사장의 나무판 거푸집을 흩거나 짜맞춰 만들었던 설치 작품 ‘미완성의 프로젝트’를 다시 재현했다. 안쪽 공간에는 고추를 담아 매단 망태기와 장독대로 이뤄진 하 작가의 또 다른 설치작품 ‘고추팝니다-2025’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이 야릇한 반가움과 안도감, 그리고 착잡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술관의 백색 전시 공간 바닥에 1980~90년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공사 황금성게임다운로드 판 현장의 나무판 거푸집이 진중한 설치 작품이 되어 흩어진 풍경이 당대를 살고 겪었던 이들에게 던지는 감흥은 깊고 강렬하다.
지난달 말부터 ‘난지도·메타-복스 40: 녹아내린 모든 견고함’(23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의 지하 1층 전시장 들머리 공간에서 이 작품을 만나게 된다. 당시 청년미술운동 모임 ‘난지도’ 동인이 황금성사이트 었던 하용석 작가가 펼쳐놓은 설치 작품 ‘미완성의 프로젝트’다. 1987년 공사장에서 가져온 거푸집을 얼기설기 다시 짜맞춰 재현한 것이다. 그 안쪽 공간에는 고추를 담아 매단 망태기와 장독대로 이뤄진 하 작가의 또 다른 설치 작품 ‘고추팝니다-2025’도 보인다. 올해 만든 신작이라지만, 1980년대 한국 땅에서 부대끼던 청년 미술인들의 현실 인식과 고뇌가 바다신2다운로드 지금 시점에도 생생하게 와닿으면서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전위성의 경계와 개념에 대한 생각까지 일으키게 한다.
이 전시는 민중미술과 모더니즘미술 대립 구도가 이어지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던 1980년대 중반 등장한 청년작가 동인 난지도와 메타복스의 작업들을 재조명한다. ‘녹아내린 모든 견고함’이란 부제는 사상가 마르크스와 골드몽 엥겔스의 유명한 19세기 저술 ‘공산당선언’의 수사적 표현에서 인용한 것이다. 당시 한국 모더니즘 미술판의 전위 구실을 했던 두 청년 작가 모임이 당대 사회 현실에서 접하는 폐기물과 실생활용품, 역사적 기록물 등을 실물 그 자체로 분석하고 작품에 녹여냈던 방식을 일종의 유물론적 사유와 태도로 21세기인 지금 바라본다는 의미를 내장한다.
서 릴박스 울 쓰레기 매립지 이름을 그룹명으로 삼은 난지도는 폐자재와 일상 오브제를 재료 삼아 시대적 현실과 인간 존재를 드러내는 설치 미술을 주로 내놓았다. 초월을 뜻하는 메타와 목소리를 뜻하는 복스를 결합시켜 작명한 ‘메타-복스’ 동인은 언어와 조형, 신화적 형상성을 결합해 역사적 오브제를 도입하고 인간적인 서사의 회복을 좇았다. 이들은 1970년대 이래 90년대까지 제도권 모더니즘 화단의 주류로 군림했던 벽지풍의 단색조회화가 지닌 공허한 형식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모더니즘의 기반을 바탕으로 하되 작가 개인의 주체적 표현, 당대 사회 현실의 서사와 신화성 등을 수용하면서 198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적인 미학을 정립하기 위해 애썼다.



지하 2층 전시장 공간. 폐선풍기의 모터 부분을 줄지어 옆벽에 붙인 신영성 작가의 1986년 오브제 작품 ‘코리안 드림’이 재현 작품으로 설치됐다. 안쪽에는 폐목재와 합판을 조합해 허접한 분위기의 집 모양을 만든 홍승일 작가의 신작 설치 조형물 ‘불멸의 흔적’이 매달려 있다. 노형석 기자


전시는 난지도 모임의 박방영, 신영성, 하용석 작가와 메타복스에 참여한 김찬동, 하민수, 홍승일 작가의 구작과 신작을 1층과 지하 1~2층에 층층이 배치하면서 이들의 생각을 당대 작품의 재현품과 현재 신작을 통해 드러내려 했다. 지하 1층 하용석 작가의 작품에 이어 지하 2층 전시장 공간에 가면 폐선풍기의 모터 부분을 줄지어 옆벽에 붙인 신영성 작가의 1986년 오브제 작품 ‘코리안 드림’이 재현 작품으로 설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쪽에는 폐목재와 합판을 조합해 허접한 분위기의 집 모양을 만든 홍승일 작가의 신작 설치 조형물 ‘불멸의 흔적’이 매달려 있는데, 디지털 미디어아트가 횡행하고 개념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지금 미술판의 전시와는 결이 다른 실감과 질감, 정감을 느끼게 된다. 산해경과 조선시대 무예도보통지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끌어낸 김찬동 작가의 기록물 설치 작업과 사람과 물고기의 군상을 실로 자아 형상화한 하민수 작가의 따듯하고 인간적인 수예 작품은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은 미감을 보여준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었던 리얼리즘 민중미술과는 또 다른 궤적의 탈모던 예술 실험의 재현과 현재, ‘해체 이후의 실천’을 질문하는 셈이다.
지난 8일 열린 기념 심포지엄에서 조수진 미술사가가 짚은 것처럼 난지도와 메타복스는 70년대 실험미술의 전위적 기맥을 이어받아 한국 모더니즘의 자기 극복과 갱신에 힘썼다. 90년대 이후 이불, 최정화 등에 의해 본격화하는 포스트모던 미술의 앞자리를 차지하면서 한국적 미학을 추구한 현대미술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구실을 했다. 뚜렷한 미술사적 발자취를 남겼으나 90년대 이후 묻혔던 당대 청년미술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란 점에서 의미가 가볍지 않은 전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